1. 사진으로 보는 사역
2. 기도제목
1) 말씀 안에서 주님의 뜻을 잘 분별할 수 있는 성령 충만한 삶과 사역이 되게 하소서
2) 길과 진리와 생명이신 주님께서 그 큰 사랑으로 북녘의 문을 속히 열어주시고 죽음의 고통과 억압으로 신음하는 백성들을 구원하소서.
3) FRCRC 스탭과 훈련생들이 성령 충만하여 하나님 안에서의 삶과 사역이 되게 하소서
4) 북녘에 청소년 복지 학교를 세울 수 있는 환경과 여건이 열리고 하나님의 지혜와 함께할 동역자를 만나게 하옵소서.
3. 프로필
신나라 선교사
신나라 선교사님은 8년간 동산 교회 전도사로 사역하였고, 2011년에 선교사로 파송을 받아 지금까지 NK 관련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코로나 이후, 2020년 3월부터 태백에서 섬기고 있습니다.
1. 어떻게 하나님을 믿게 되셨나요?
저는 불신 가정에서 성장했습니다. 19살 때부터 언니를 따라서 카톨릭 성당에 다니면서 청년시절을 보냈습니다. 그러다가 어머니의 지인으로부터 남편을 소개 받았고, 부모님들의 결정에 따라 만난 지 두 달 만에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남편과 부모님 모두 철저한 불교 가정이었습니다. 그러나 부모님을 거역하지 못하는 성품으로 자란 저는 그저 부모님께 순종하는 게 최선이었습니다. 저는 카톨릭 신자였지만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지 못한 형식적인 예배 생활이 믿음의 전부였습니다. 결혼 후 예배 생활은 허락이 안 되었고 그러한 가정생활은 결코 순탄할 수 없었습니다. 고난의 깊은 터널 속에서 길을 잃고 절망 가운데 있을 때, 6살 딸의 친구 어머니로부터 초대를 받고 간 곳이 소그룹 예배 모임이었습니다. 그때 목사님의 말씀과 기도를 통해 성령의 임재를 경험하고 인격적으로 주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 나의 하나님으로 믿고 거듭나게 되었습니다.
2. 본 교회에서 전도사로 사역하다가 선교사로 파송받게 된 이야기를 말씀해 주세요.
1991년 말, 깊은 고난 가운데 기도원에 올라가 기도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곳에서 한 탈북 자매를 만나게 되었고, NK의 고통과 비참한 상황에 대해 듣게 되었습니다. 그 소식은 저에게 애통한 첫 번째 기도 제목이 되었습니다. 두 달여가 지나던 어느 날 기도 중에 말씀을 주셨는데 바로 요한계시록 2장 10절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저는 이것이 북한을 향한 부르심임을 깨닫고 참으로 두려웠습니다. 그러나 저도 모르게 순종의 기도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그 후 94년부터 신학 공부와 교회사역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어느덧 NK을 향한 부르심에 대한 열정은 점점 식어갔습니다. 지금 그곳은 한국과 적대적인 관계이기 때문에 한국인인 저는 접근할 방법이 특별히 없다고 생각하여 그저 기도만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우리 교회 평신도 선교 훈련 학교(LMTC)를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교역자로서 시간이 맞지 않아서 미루고 미뤄왔던 터라 2008년에야 참여하여 수료 과정인 비전트립을 가게 되었습니다. 저는 C국을 선택했는데 지역이 NK와 접경지역이란 사실은 현장에 가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 팀은 그 땅이 가깝게 보이는 한 지역에서 모두 함께 그곳을 향해 기도할 때 ‘내가 너에게 약속한 그 땅이다.’라는 마음을 강하게 주셔서 너무나 놀라 저는 그만 주저앉아서 한참을 울며 하나님께 다시 헌신을 약속드렸습니다. 그 사건은 제 후반전의 사역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고, 기도하며 선교 준비를 하였습니다. 2010년 말까지 모든 사역을 마치고 당시 김인중 담임목사님과 당회, 그리고 선교국의 승인에 따라 파송을 받게 되었습니다. 아울러 한국OMF 단체 소속으로 훈련과정을 마치고 2011년 10월 C국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3. 선교지에서 하시는 사역을 소개해주세요.
사실 헌신을 한 후에도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이미 주님은 저를 잘 알고 부르셨다는 확신이 있었기에 하나님을 신뢰하며 준비하고 있을 때, 예비하시고 준비하신 길로 인도하셨습니다. 제가 도착한 C국 Y지역은 여러 나라에서 온 많은 외국인이 함께 모여 다양한 활동으로 NK를 섬기는 베이스캠프였습니다. 그들과 팀 사역을 하면서 저는 국제단체 멤버들의 한국어 교육과 팀 활동을 돕고, C국 공동체에서 멤버케어 및 언어교육, NK 사역의 필요를 돕고, 한국 교회 동원 사역을 담당하였습니다.
현지인 멤버 중 한 형제의 아내가 인터넷 중독으로 가정 생활을 못하고 있었습니다. 어린 아들은 낳자마자 친정에 맡겨 부모님께서 양육하고 있었습니다. 일대일 양육과 섬김을 통해 인터넷을 끊고 가정이 회복되고 자녀를 데려와 양육하게 되는 은혜를 주셨습니다.
2017년에는 선교국에서 NK 나선지역에 우물 하나를 파주셔서 그 지역 주민들이 큰 힘을 얻었습니다. 2018년에는 하나님의 은혜로 개인적으로 나선의 한 유치원에 1년 식량과 땔감을 섬기게 하셨습니다.
2020년 1월, 비자를 위해 잠시 한국에 나온 사이 코로나 팬데믹이 터졌습니다, 우리들의 사역지인 C국과 NK가 가장 먼저 닫히고 전 세계가 닫기 시작하면서 모든 것이 멈춰졌고 막연하게 기다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한순간도 멈추지 않으시고 일하고 계셨습니다. 2개월 후인 2020년 3월부터 지금의 태백으로 새 길을 여시며 모든 환경을 준비해 주셨습니다.
지금 태백은 C국의 필드가 이전된 한국의 베이스캠프가 되었습니다. 현재까지 14개의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모여서 NK를 위해 훈련하며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저는 한국문화, 한국어 교육과 사역 공동체를 섬기며 협력하고 있습니다. 이곳 훈련과정을 거쳐간 외국인 사역자들은 40여명 정도가 있으며, 현재 그들은 사역을 위해 활발한 섬김을 하고 있습니다. 지난 8월에는 7년간 섬겨오던 C국 자매가 한국에 와서 2년간 한국어 공부하고 한국 교회와 단체 파송을 받았습니다.
4. 선교사님의 향후 사역계획이 궁금합니다.
지금은 앞이 안보이지만 NK의 문이 열리면 고아 청소년을 위한 복지 기술 학교를 세우는 것입니다. 그 안에서 예배하고 하나님의 사람을 길러내어 사회에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것입니다. 이 비전은 하나님께서 주신 엔드비전입니다.
5. 기도제목을 말씀해주세요.
1. 모든 환경과 상황 가운데 말씀과 성령의 음성에 민감하게 반응하여 주님의 기쁜 뜻을 이루는 제가 될 수 있도록.
2. 태백에서 NK를 위해 준비하는 모든 사역자들이 겸손히 믿음의 인내와 지혜로 기다릴 수 있도록.
3. NK의 모든 지도자들이 살아계신 하나님의 역사를 통해 굳게 닫힌 문을 열 수 있도록.
연락처 : shinyh57@naver.com 010-2310-9596
후원계좌 : 국민은행 049790-29-000016 오엠에프 신나라
후원회장 : 김영철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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