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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 편지

캐나다 장천득 선교사 3월 선교편지

by 동산선교소식 2025. 4. 2.



생존에 지친 당신에게 필요한 것 (요 6: 22 – 35)

살아가기 참으로 힘든 세상입니다. 전쟁의 시대입니다. 관세전쟁, 무역전쟁입니다. 뉴스보기가 겁이 납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뉴스 폭탄입니다.  온세상이 카오스라 마음 편히 잠을 자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미국에서 들려오는 소식, 한국에서 들려오는 소식…. 아무리 눈을 씻어도 좋은 소식 하나 없습니다. 고물가, 고환율, 관세전쟁에…. 생활하기 참으로 벅차고 힘든 세상입니다. 지난주에 커피한잔 하기위해 카페에 들어갔습니다. “아메리카노” 하나 주세요... 주문하는 순간 주인이 인상을 찌부리며 신경질을 내면서….   “We don't have Americano! Canadiano !” 메뉴를 보았더니... 정말 아메리카노는 없고 케네디아노만 있습니다. 순간 당황스러웠습니다. 캐네디언 대다수가 화가 나 있습니다. “캐나다는 미국의 51번째주가 되어야 한다.”는 트럼프의 말에 분통을 터뜨립니다.  “너의 아내 내놔! ” 이 말과 같다고 생각을 한다고 합니다. 매우  무례하고 불쾌한 말입니다. 사실 저는 목사로서, 기독교인으로서 트럼프의 친기독교적 정책이 참 고마운 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한편 미국의 일방주의,  패권주의, 파시즘적 태도에 심히 걱정이 됩니다. 미국의 현재 핵심가치는 미국이라는 국가와 거기서 살아가는 개인의 “생존문제”에 다름아닙니다. 국민들의 생존의 문제 해결을 위해 Make America Great Again !... 과도한 부채로 어려운 미국이라는 나라의 생존을 위한 관세전쟁, 무역전쟁입니다. 

캐나다는 어떤가요? 아는 목사님으로부터 밴쿠버에 20대  청년들의 비전에 대해 들은 이야기입니다. 20대 청년들의 비전이 나이 40이 되기까지 백만불(1Million)을 모으는 것이 꿈이라고 합니다. 아파트 하나라도 장만해야만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위기의식, 미래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생존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인지, 교회에 출석하는 청년들이 많지 않습니다. “교회를 다니면 돈이 나옵니까? 빵이 나옵니까?” 빵문제를 해결해주는 하나님을 찾는다니 할 말 없습니다. 물론 생존의 문제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생존의 문제는 우리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평생 씨름하는 문제입니다. 누구나 돈 걱정 없이 살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입니다. 돈걱정, 생존에 대한 염려로 누구나 그런 고민을 합니다. “하나님 이번 한 번만 도와 주시면 제가 예수 더 잘 믿겠습니다. 이번 한 번만 살려 주시면 생명 다해 충성하겠습니다.” 이런 기도를 하는 경우를 주변에서 보고는 합니다. 문제가 해결되고, 모든 것이 안정되면…. 하나님께 영광 돌리겠습니다. 문제만 해결되면 우린 예수를 더 잘 믿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런 날은 사실 오지 않습니다. 경험으로 이미 스스로 잘 압니다. 현재 이곳에서 (Here and Now)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은 상황이 나아지고 성공한다고 예수를 더 잘 믿을까요? 세상에서 성공하면 하나님의 은혜라고 더 예수를 잘 믿을까요? 기도하는 것보다 열심히 실력을 갖추고, 인맥을 만들고, 운이 좋아야 한다! 사실 오늘 예수님과 관계없이 살아가면 내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심령에 예수생명이 없기에 생존만을 위해 분투합니다. 물론 생존의 문제는 결코 작은 일은 아닙니다. 그래서  땅만 바라보니 하늘을 잊어버립니다. 먹고 사는 문제에 메이다 하나님의 나라를 잃어버리고, 생명을 잃어버립니다.

" 예수 믿으면 밥이 나오냐 떡이 나오냐? " 예수는 겨우 먹고사는 문제만 해결해 주시는 분입니다. 예수님을 떡으로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떡을 먹고 배불러 예수님을 따르는 무리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갈릴리를 두루 다니시면서 수많은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따라온 수많은 무리들이 있었습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 6장 1절부터는 예수님이 오병이어로 5,000명을 먹이신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이 5천명의 사람을 5병 2어 기적으로 먹이신 기적의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열성 팬들은 늘 구름떼처럼 몰려들었습니다. 예수님의 팬(Big Fan)들이 늘 주님을 따릅니다. 병든 자를 고치시고, 죽은 자를 살리시고, 기적을 행하고… 급기야는 어린아이 도시락 하나로 5천여명을 먹이시는 기적(Semeion)이 6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어린 아이의 도시락, 5병2어를 축사하신 후에 5천명을 풍성하게 먹이십니다. 예수님을 믿고 따라왔더니 자신들의 배고픔의 문제를 해결해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기적을 행하시는 분입니다. 귀신들린 사람을 치유해 주십니다. 주님은 병든 자를 고쳐 주시는 분입니다. 눈먼 자를 보게 하십니다. 예수님은 부족함을 채워주시는 분입니다. 자그마치 5천명을 먹였으니 이런 기적도 없습니다. 

역사상 예수님 같은 분이 있었습니까? 그래서, 군중들이 “예수님을 붙잡아 임금삼고자 하더라” (요 6: 15) 왜 예수를 따르는가? 기적을 행하는 모습을 보니 이분이야말로 우리의 왕이 되면 좋겠다… 라고 생각을 한 것입니다. 로마가 파견한 총독이 있고 유대인의 왕이 있지만… 기존의 체제를 뒤엎어 버리고 새로운 나라…. 먹고 살기 좋은 나라로 만들어 줄 왕, 통치자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마치 미국에서 트럼프 같은 사람을 대통령으로 세운 것과 동일합니다. 일자리와 먹고사는 문제 해결해 줄 사람을 통치자로 세우는 것입니다.  문제 해결사, 우릴 배부르게 먹이시는 분, 현실적 필요 때문에 예수를 따른 것입니다. 예수가 죄의 문제를 해결해주고 하나님 나라와 영생을 주시는 분(?)… 그런 것은 애당초 관심조차 없습니다. 예수를 따르면 잘 먹고 잘 살게 될 것 같고, 뭔가 나올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떡을 먹고 배부르기 때문이다. (요6:26) “ 너희들은 나를 오해했다. 너희가 나를 따르는 이유는, 나를 왕으로 삼으려는 이유는… 내가 떡을 가져다 줄 통치자, 단지 현실적 문제를 해결해 줄 구원자, 필요를 채워주는 자, 기적을 베푸는 자, 단지 질병을 고쳐주는 자…… 내가 누구인지……왜 이 땅에 왔는지 너희들은 전혀 모른다. 사람들은 어쩌면 “트럼프와 같은 왕이 되어 주세요! 떡을 주세요. 재정문제를 해결해 주세요. 아픈 사람을 낳게 해주세요. 기적을 보여 주세요! 더 많은 것을 주세요! 더 좋은 것을 주세요. 기적을 통해 당신능력을 보여주세요!”  사람들은 메시야로서 예수님, 하나님 나라의 싸인(표지)을 본 것이 아니라 마술 부리는 한사람, 로마제국을 뒤엎을 혁명가, 기적을 행하는 부리는 한사람을 보았을 뿐입니다.  한마디로 예수님을 믿고 따른 이유는 단지 떡 먹고 배부른 까닭입니다. 현실적 필요가 사라지면 구원자가 사라집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의 배고픔을 불쌍히 여겨 떡을 주셨지만 군중들은 떡만 구합니다. 현실이 신앙의 목적이 되어 버렸습니다. 기적을 본다고 사람이 변할까요? 대개는 그때 뿐입니다.
 

“예수 믿으면 밥이 나오냐 떡이 나오냐? 돈이 생기냐? 기도해봐야 별거 있냐?” 예수님은 나의 필요한 때에만 존재하는 분, 내가 요청하면 응답하셔야 하는 분, 내가 부르면 달려 오셔야 하는 분, 너무 가까워도 피곤하고 위험한 분, 헌신을 요구하는 분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예배의 자리, 기도의 자리가 텅~ 비어 갑니다. 예수 믿어도 거리두기(Social Distancing)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은 생존을 넘어선 생명을 주시는 분입니다.  “너희 조상들은 광야 40년 길에서 만나를 먹었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양식, 신비한 것을 먹고 생명을 유지했다.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것, 그것은 음식이 아니라 생명이었다. 하나님의 은혜로 너희들이 산 것이다. 광야에서 생존하기 위해, 생명을 위해서는 매일매일 하늘을 바라 보야야 한다. 너희가 믿는 통치자,  땅에는 생명의 근원(source) 없다. 땅에는 너희 소망이 없다. 너희의 생존(BIOS)은 하늘에서 온다. 너희 생명(ZOE)도 하늘에서 온다. 광야에서 만나가 없었다면 너희들은 다 죽었다. 매일매일 너희 조상들은 단지 음식을 먹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먹고 마신 것이다. 나는 일용할 양식을 주는 하나님이다. 생존하려면, 생명을 얻으려면…. 생명의 근원인 하나님만 바라보아야 한다. ” 이것이 요한복음 6장의 주님의 말씀입니다.

6장 35절 말씀을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나는 “생명의 떡” 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예수님이 주시는 것은 생존을 위한 떡이 아니라 생명입니다. 생명이라는 말을 한번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요한복음 전체에 생명(life), 영생 (eternal life)이라는 말이53회 반복됩니다. 많은 성도님들이 생명이라는 말을 문자적으로 오해합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생명(영생)은….. 단지 오랜 시간 사는 목숨(long life)가 아닙니다. 생물학적인 천년, 만년의 기간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의 예수 믿으면 영생한 다는 말이 천년만년간 무병장수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여기에서 영생(생명)이라는 말은 헬라어로 2가지 단어가 있습니다. 하나는 BIOS로, 생물학적 의미로 이 땅에서의 생명, 생존, 생계를 뜻하는 비오스(BIOS)가 있습니다. 또다른 단어인, Zoe, 생명, 영생 (ZOE/ 조에)이 있습니다. 하나님 자신의 생명, 하나님과 교제와 관계 속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생명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심을 통해, 하나님 자신의 생명(ZOE)을 주심을 통해 우릴 하나님과의 관계로, 삼위 하나님의 생명(ZOE)안으로 초청하시는 것입니다. 구원은 죽은 자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산자(living spirit)가 되는 사건입니다. 생명이신 하나님 자신의 생명을 주시는 사건입니다. 하나님의 생명이 없어 죽은 영, 죽은 자였던 우리가 하나님의 영, 성령으로 거듭나(Born Again)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사건입니다. 비로서 하나님과 교제하며, 더불어 먹고 마시며 교제하며 하나님의 나라 안에서 살아갑니다. 생명의 원천이 하나님이시기에 하나님만이 생명을 주십니다. 그 생명으로 하나님의 DNA를 가진 하나님의 형상으로 온전히 회복되어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이란 무엇입니까? 단지 죄 용서 받고, 지옥에 가면 안 되니까(?)가 아닙니다. 단지 행복하게 살기위해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닙니다. 장소적 의미에서 천국이 구원의 목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말을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린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을 믿음으로 삼위 하나님과 연합되어 하나님의 생명이 우리 안에 들어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 성령을 부어 주심으로 하나님의 사랑이 부은 바 된 것을 구원사건이라고 성경은 증언합니다. 여러분이 잘 아는 것이 있습니다. 성만찬식 때(Lord’s table)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심으로 하나님과 연합되었음을 기념합니다. 그래서, 주님의 살과 피가 내 안에 들어왔음을 성찬식때마다 확인하며 고백합니다. 주님의 생명이 내 안에 들어왔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의 생명을 먹고 마신 자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영적으로 연합된 자인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예수생명으로 태어난 존재입니다.

예수생명이 내 안에 들어 옴으로 우린 하나님과 관계가 회복되었습니다. 하나님과 친밀하게 교제할 수 있는 존재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생명이 내 안에 들어와 그 은혜와 사랑으로 하나님과 더불어 함께 교제할 수 있는 존재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구원은 관계의 변화, 존재의 변화입니다. 영원토록 하나님과 교제하며 함께하며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사람,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교회를 오래 다닌다고,  제대로 된 성경의 교리 (칭의구원론, 예정론등...)를 안다고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닙니다. 옳바른 기독교 교리도 중요하지만 기독교 교리를 믿는다고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교리로 거듭나는 것이 아니라...  예수의 피로 거듭난 사람,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심으로 하나님의 자녀된 사람, 하나님의 DNA를 가진 사람만이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사람, 하나님의 생명을 가진 자인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과 교제하기 위해서는 통하는 것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하나님과 비슷한 구석이 있어야 합니다. 자녀가 부모를 닮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나님을 닮아야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인간과 벌레는 교제할 수는 없습니다. 영생, 하나님 자신의 생명을 주신 이유는 하나님과 우리가 비슷한 구석이 있어야 교제하며, 대화하며, 영원토록 함께 즐거워하며 교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은 하나님을 닮은 구석이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Image, likeness)이라고 말합니다. 예수의 생명, 성령님이 우리 안에 찾아오셔서 내주하심으로.... 하나님 수준으로 우리를 대우하신 것입니다. 십자가의 피가 있는 곳에 생명이 있고 생명이 있는 곳에는 사랑이 있습니다. 사랑이 있는 곳에는 또 생명이 탄생합니다. 영적인 원리입니다. 그리고 생명은 다시 사랑의 연합때문에 또다시 생명을 낳습니다. 생명과 사랑은 분리될 수 없는 하나입니다. 이것이 창조 질서이며 구원의 원리입니다.  
성령님을 부어 주심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하셨다! 우리를 살리는 영, 생명이신 성령님을 주셔서 하나님과 교제하며 하나님을 알게 하셨다... 이것을 영생이라고 합니다. 영생이 천년만년(Eternal Life is not long life)가 아닙니다. 영생(eternal life)이 천년만년 안 죽고 불멸하는 것 (Immortal)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피조물이지만… 하나님처럼 지으신 이유, 구원하신 이유가 도대체 무엇입니까? 우릴 사랑의 대상으로, 인격적 존재로 지으신 이유는 하나님과 친밀하게 교제(Intimate relationship)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생명(ZOE)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랑하시기에 우리의 사랑을 기대하십니다. 인격적 만남 속에는 사랑과 존중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그렇게 대우하시기에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며 존중하기 원하는 것입니다. 일방적인 관계가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생명으로 우린 하나님과 교제하며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릴 세상에서 죽어라 일하다 천국에 오라고 구원한 것이 아닙니다. 사랑 없이 일만 열심히 하는 사람처럼 위험한 사람, 불쌍한 사람도 없습니다. 마지막에는 하나님 앞에, 사람 앞에 남는 것이 하나도 없으니까요…  오직 생명을 사랑하고 사랑으로 한 것만이 영원히 남습니다. 사랑 없는 열심은 누가복음 15장의 집 나간 아들(탕자의 비유)에 나오는 첫째 아들이 되기 십상입니다. 사랑이 없기에 생명이 없고, 하나님의 나라 잔치에 참여하지 못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사랑의 관계 때문에 “마음을 다해, 뜻을 다해 목숨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기 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그 사랑, 어느 누구에게도 빼앗기고 싶지 않다 ! 질투하는 사랑으로 우릴 사랑하십니다. 자신의 수준에서 우리가 하나님과 교제하길 원해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드셨습니다. 굳이 왜 하나님 자신의 생명을 주시고 하나님의 형상으로? 가령, 사람과 돼지는 교제할 수 없습니다. 창조의 종류, 형상(image, likeness)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비슷한 것, 통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대통령도 거지와 친밀하게 교제하지는 않습니다. 같이 대화하며 교제하기 위해서는 수준(Social level)이 맞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더욱 친밀하게 교제하기 위해 우리가 하나님처럼 더욱 거룩하고 의롭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생명을 주심으로… 우릴 인격으로 대우하시며 “나와 함께 하자, 나와 교제하자…” 라고 초청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린 인격인 하나님을 비인격적으로 대우합니다. 하나님을 단지 기적의 도구로 대우합니다. 하나님을 필요할 때만 찾습니다. 하나님은 그 사랑 때문에 우리에게 기꺼이 이용당해 주시지만… 사랑은 이용하는 관계가 아닙니다. 우린 하나님을 이용하려 합니다. 하나님을 조정하려 들며, 때로는 하나님을 떠난다고 협박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어떤 때는 하나님 노릇을 합니다. 하나님을 떠나 영적인 간음, 우상을 만들기도 합니다. 나에게 소중한 것들을 만들어 숭배합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예수생명입니다!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 (BIOS가 아니라 ZOE)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요10:10). 기독교는 생명의 종교입니다. 예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며…. 오직 예수안에만 생명이 있습니다. 신이 피조물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내어준 경우는 어느 종교에도 없습니다. 주님은 우리와 더 친밀하며 풍성하게 교제하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나누어 주셨습니다. 모든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은 죄의 결과로 죽은 우리를 사망에서 건지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내어 주셨습니다. 마친 신랑이 신부와 하나되기 위해 모든 대가를 치루듯이…. 자신의 살과 피를 나누어 주심으로 우리와 하나되길 그토록 원하셨습니다. 35절에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예수님은 “나에게 오라 ! 생존이 아닌 생명을 위하여 나에게 오라” 말씀하십니다. BIOS(생존)이 아니라 ZOE(예수생명)으로  살라….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생명…. 하나님과 교제하며, 하나님과 연합되어 생명으로 살아라! 너의 BIOS 호흡은 곧 끊어진다. BIOS를 위해 살면 ZOE를 잃어버린다! 생존을 위해 살다가 생명을 잃어버린다!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생명을 오늘 바로 이곳에서(Here and Now) 누리라. 예수님은 나와 함께 영원토록 즐거워하며 나와 함께 살자. “나의 사랑하는 자여, 나와 함께 가자!” 그렇게 말씀하십니다. 천국은 장소가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하나되어 생명을 나누며 사랑을 나누며 즐거워하는 자체입니다. 생명이 있는 곳에는 사랑의 나눔이 있고, 사랑이 있는 곳에는 생명의 역사가 있습니다. 마치 신랑과 신부가 결혼해서 함께 살기 위해 신랑되신 예수님은 신부 된 교회를 위해 자신의 생명을 내어준 것입니다. 세상에서 이런 신랑을 본 적 있습니까? 주님 주시는 생명, 그 친밀한 교제, 풍성한 생명, 사랑의 나눔을 누리는 여러분 되시길 예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캐나다 크리스천신문 2025년 3월 21일 전자신 https://christiantimes.ca/pdf-viewer/#flipbook-2025-03-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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